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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

바탕질 물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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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 리 말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허구적 논리로 구성되었고, 허구적 논리로 구성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그동안 자연의 물리현상을 변칙적 의미로 해석하였다. 즉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현대물리학은 처음부터 비정상의 전제조건에서 출발하였고, 오늘날의 상황처럼 공상적 만화의 형태로 진화되었다.

현대물리학을 절대적 진리의 정상과학으로 신봉하는 강단 물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현대물리학의 폐기를 요구하는 필자의 주장이 조건반사적으로 간단히 무시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제시되는 ‘절대성이론’의 본론으로 들어가면, 현대물리학에 대한 강단 물리학자들의 맹신적 고정관념이 반드시 반전될 것으로 확신한다.

강단의 물리학자들은 그동안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허구적 주장을 교묘한 논리로 희석 무마하였다. 또한 현대물리학의 주장이 완벽한 논리적 검증과 실험적 검증을 통하여 최선의 방법으로 선택되었다는 위선적 최면에 걸려 있다. 그러므로 현대물리학의 타당성 여부를 확인하려면, 독자들의 냉철한 이성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강단의 물리학자들은 그동안 상대성이론의 부정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상대성이론의 긍정적 유효성만을 강조하였다. 또한 상대성이론의 비정상적 주장을 무마하기 위해 다양한 변칙적 변명을 개발하였다. 이와 같이 논리적 결함을 갖는 현대물리학이 그동안 폐기되지 않았던 이유는, 강단 물리학자들의 오해와 착각으로 우격다짐의 이해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강단의 물리학자들은 자신의 판단과 분별력이 언제나 완벽 타당한 것으로 확신하고, 현대물리학의 왜곡된 주장을 후학들에게 독재적 계몽으로 설득하였다. 그렇다하더라도 우리들은 현대물리학의 허술한 주장을 엄밀하게 점검하지 않고, 맹신적으로 수용한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참으로 한심한 논리의 비정상적 주장으로 성립되었다. 이러한 상대성이론의 비정상적 주장이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의 지지를 받아 왔다는 사실은, 더욱 희한하고 불가사의한 만화적 사건이다. 상대성이론의 주장처럼 논리의 전개과정이 일관되지 않고, 비정상의 논리가 편의적으로 선택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흔하지 않았던 실수다. 상대성이론의 허무맹랑한 주장이 오늘날까지 건장한 모습으로 생존되는 것은, 이 세상의 큰 모순이다.

대학의 강단에서는 상대성이론의 비정상적 주장을 대중적 다수결로 선택하고, 자연현상에 대한 합리적 탐구를 포기하였다. 상대성이론의 문제점은 논리의 일부분에서 국소적 결함을 갖는 것이 아니고, 처음의 출발부터 완성적 결과까지 빈틈없는 왜곡의 가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러한 필자의 지적은 상대성이론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간단히 수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제시될 [절대성이론]의 내용을 읽어 보면, 독자들도 필자의 지적을 이해하고 수긍할 것으로 확신한다.

현대물리학의 주장을 절대적 진리로 신봉하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상대성이론의 전제조건,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 상대성이론의 유도과정과 물리적 의미, 상대성이론의 완성적 구조가 타당한 것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선행적 신뢰로 상대성이론이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상대성이론의 긍정적 수용과 상대성이론의 성립과정은 상호적으로 보증하는 관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가식적으로 위장된 상대성이론의 고정관념을 함부로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상대성이론의 고정관념이 포기되지 않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상대성이론의 온전한 이해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상대성이론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곤란할 경우, 이 불분명한 부분의 주장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여기에서 불분명한 부분의 영역까지 무조건의 신봉을 강요하는 것은 물리학의 건전한 발전을 방해한다.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은 비정상의 전제조건에서 출발하였고, 이 상대성이론의 유도과정은 논리적 결함을 갖는다. 이러한 상대성이론의 변칙적 주장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위선적 가식이거나 오해와 착각에 불과하다. 즉 변칙적 논리의 상대성이론을 긍정적 의미로 수용하는 과정에서는, 중대한 오해가 개입되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상대성이론의 온전한 이해가 곤란할 것이다. 여기에서 상대성이론의 온전한 이해가 곤란하더라도, 그것은 독자들의 인지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의 예로 상대성이론의 주장이 왜곡적 논리로 구성되었으면, 이 상대성이론의 온전한 이해가 곤란할 수 있다. 만약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이 왜곡적 논리로 구성되었을 경우, 이 상대성이론의 온전한 이해가 곤란하다는 독자들의 솔직한 고백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표현이다.

사실은 상대성이론을 주장한 아인슈타인의 입장에서도 상대성이론의 본질을 오해하고, 상대성이론을 강의하는 물리학자들도 상대성이론의 본질을 오해하였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상대성이론의 본질을 모르면서 무조건으로 옹호하니까, 그 미지의 신비감이 경외의 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불분명한 상대성이론의 주장을 완벽하다는 의미로 가르치고, 미지의 상대성이론을 온전히 납득된 것으로 오해(착각)하는 지식의 변칙적 전수과정은, 지난 100 여 년간 은밀하게 반복적으로 순환되었다. 즉 상대성이론을 가르치는 강단의 물리학자들이나 배우는 수강생들은 그동안 상대성이론의 본질이 타당한 것으로 신뢰하였으나, 이 상대성이론의 주장은 정상적 이성으로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논리적 결함을 갖는다.

상대성이론의 변칙적 전수과정은 그동안 일반인의 대중들에게 비공개의 장막으로 차단되고 오직 물리학과의 강단을 출입하는 사람들만이 신비스러운 밀교처럼 학습되었다. 그러므로 상대성이론의 강한 위선적 최면은 대학의 강단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만이 걸릴 수 있다.

강단의 물리학자들은 그동안 불분명한 의미의 상대성이론을 완성된 지식처럼 강의하고, 강단의 학생은 불분명한 의미의 상대성이론이 이해되는 것처럼 수강하였을 뿐이다. 이와 같이 불분명한 의미의 상대성이론을 강의하고 수강하면서 100 여년의 아까운 세월이 낙화유수처럼 속절없이 그냥 흘러갔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주장하는 최초의 도입과정이나, 상대론적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를 유도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의 가정적 조건이 전제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전제한 모든 가정적 조건은 논리적 결함을 갖고, 정상적으로 전제된 가정적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만약 상대성이론의 도입과정에서 30 가지의 전제조건이 동원되었다면, 이 30 가지의 전제조건이 전체적으로 몽땅 100 %의 결함을 갖는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서글픈 사연이다.

상대성이론의 본질은 비정상적 전제조건으로 구성된 변칙적 주장의 순수한 모순덩어리다. 즉 상대성이론의 모든 주장은 진실성을 눈곱만큼도 포함하지 않은 엉터리의 논리로 완성되었다. 필자의 입장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엉터리의 주장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렇게 규정할만한 충분한 논리적 근거가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은 분명한 논리적 결함을 갖고,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도 비정상적 논리로 유도되었다. 그러나 비정상적 논리로 유도된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는 실제의 물리현상(실험결과)과 엄밀하게 일치되는 유효성을 갖는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귀신이 곡할 희한한 기적이다.

비정상적 논리로 유도된 상대론적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가 실제적 상황의 물리현상과 엄밀하게 일치하는 것은, 이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가 변칙적 논리로 유도되었으나, 로렌츠인수 의 완성적 형태가 정상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절대적 좌표계를 갖는 새로운 공간모형이 제시된다. 또한 절대적 좌표계를 갖는 새로운 공간모형에서는 [절대성이론]의 적용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절대적 좌표계를 전제한 새로운 공간모형의 ‘절대성이론’에서는 상대성이론의 [로렌츠인수 ]가 폐기되고, 이 [로렌츠인수 ]의 대체적 방안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절대 바탕인수 ]가 유도된다.

필자의 절대성이론에서 유도된 [절대 바탕인수 ]의 일부는 상대성이론의 [로렌츠인수 ]를 유효적으로 수용한다. 하나의 예로 상대성이론의 로렌츠인수 가 절대성이론의 절대 바탕인수 에 부분적 요소로 포함되었다. 즉 필자의 절대성이론에서 유도한 절대 바탕인수 은 상대성이론의 로렌츠인수 로 구성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제시된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는 실제의 상황에서 의 부분적 유효성을 갖는다. 즉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는 그동안 자연현상의 만을 유효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절대 바탕인수 과 상대성이론의 로렌츠인수 는 동일한 형태로 구성되었으나, 이 절대 바탕인수 과 상대성이론의 로렌츠인수 는 유도과정이 전혀 다르고 물리적 의미도 전혀 다르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고전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그동안 강단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더욱 견고하게 보완되었고,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구체적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강단의 물리학자들은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자연의 모든 물리현상을 가장 완벽하게 해석하는 최선의 진리로 확신하고, 그동안 현대물리학의 부정적 비판을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대학의 강단에서 현대물리학을 최선의 진리로 신봉하고, 진지한 자세로 강의하는 것은, 현대물리학에 대한 강단 물리학자들의 신념이 그만큼 확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강단 물리학자들의 신념이 확고할수록 사고의 융통성이 경직된다. 이와 같이 사고의 융통성이 경직된 대학의 강단에서는 현대물리학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만을 강요하고, 현대물리학의 타당성 여부가 객관적 입장으로 점검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

강단 물리학자들의 일반적 신념처럼 현대물리학의 기본개념이 영원불변의 절대적 진리로 구성되었을 경우, 이 현대물리학의 도입은 가장 현명한 선택으로 인정받아야 되고, 현대물리학의 연구와 지식이 정상적으로 진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기본개념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결정적 결함을 포함하였을 경우, 현대물리학의 모든 연구와 지식은 비정상적으로 진화되었을 개연성을 갖는다. 만약 결정적 결함을 포함한 현대물리학의 기본개념이 폐기되지 않고, 비정상적 논리의 변명을 통하여 애매모호한 자세로 방치하면, 물리학의 진정한 발전이 기대될 수 없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비정상적 논리로 구성되었으나, 이 현대물리학의 일부 주장은 그동안 자연의 물리현상을 엄밀하게 해석하는 긍정적 성과도 거두었다. 여기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부분적 성공은 현대물리학의 높은 신뢰로 발전되고, 현대물리학이 정상과학으로 인정받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심각한 논리적 모순의 결함을 갖는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논리적 모순의 결함을 갖는 것은, 이 현대물리학의 주장이 비정상적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혼란의 상황을 고려할 경우,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최후의 절대적 진리로 성급하게 단정되는 것은 곤란하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100 여년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도달한 오늘날의 모습은 비정상의 기형적 구조를 갖는다. 또한 현대물리학에서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긍정적 유효성만이 과장적으로 부각되었을 뿐이고, 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논리적 결함은 의도적으로 은폐되었다.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은 광파의 구조를 정의(규정)하기 위한 과정에서 고전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출현되었으나, 이 광파의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명확한 형태로 표현되지 않는다. 하나의 예로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 제시한 광파의 구조적 모형은 파동성과 입자성의 두 기능을 이중적으로 갖는다.

광파의 구조적 모형이 파동성과 입자성의 두 기능을 이중적으로 가질 경우, 이 광파의 파동구조와 입자구조는 반드시 하나의 결집체로 통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광파의 파동구조와 입자구조를 하나의 결집체로 통합한 형태는 실제적으로 존립될 수 없다. 만약 양자역학의 사변적 논리처럼 광파의 파동구조와 입자구조가 하나의 결집체로 통합되더라도, 이 파동구조와 입자구조의 이중적 결집체는 물리학적 관점으로 수용할 수 없는 괴물의 형태가 된다.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 정의(규정)한 광파의 구조적 모형처럼 파동구조와 입자구조는 하나의 결집체로 통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광파의 파동성이 매질의 실체적 존재를 요구하고, 광파의 입자성이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공간모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는 논리적 모순의 결함을 은폐하기 위해 다시 비정상의 변명을 변칙적으로 도입하는 악순환의 왜곡적 진화가 반복되었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에서는 4 차원의 시공적 공간모형을 도입하고, 이 4 차원의 시공적 공간모형을 변칙적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4 차원의 시공적 공간모형을 변칙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 의해 실험적 검증이 곤란한 다차원 공간모형의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나 블랙홀(black hole)까지 주장하는 단계로 진화되었다.

현대물리학의 다차원 공간모형과 같은 사변적 논리의 주장은 물리현상의 본성이나 작용원리를 실체적 기능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실체적 기능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는 현대물리학의 사변적 주장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될 수 없는 한계성을 갖고, 순수한 물리학적 범위의 경계를 초월한다.

현대물리학의 사변적 주장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되지 않는 한계성을 가졌으나, 이 현대물리학의 수리학적 표현은 물리현상의 정량적 효과를 엄밀하게 해석하는 유효적 성과도 거두었다. 즉 현대물리학의 주장은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를 동시적으로 공유한다. 여기에서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를 동시적으로 공유한 오늘날의 현대물리학은 무조건적으로 신임할 수도 없고, 함부로 포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계곡에 갇혀 있다.

강단의 물리학자들은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오늘날까지 절대적 진리로 신봉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분명한 논리적 결함을 갖는다. 여기에서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논리적 결함을 갖는 것은, 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기본개념이 비정상적으로 구성되었거나, 변칙적으로 진화된 것을 암시한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기본개념은 논리적 결함을 갖는다. 만약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기본개념이 갖는 논리적 결함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물리학의 정상적 발전은 기대될 수 없다. 이러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논리적 결함을 해결하려면, 물리학에 대한 혁신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리학이 도입되어야 한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 물리현상의 정량적 효과는 수리학적 논리를 통하여 엄밀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 물리현상의 본성이나 작용원리는 실체적 기능의 관점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즉 물리현상의 본성이나 작용원리를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실체적 기능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모든 물리현상은 반드시 실체적 기능의 작용으로 발현되고, 이 실체적 기능의 작용을 통하여 모든 물리현상이 대외적으로 표출된다. 또한 실체적 기능으로 작용하는 물리현상의 효과만이 수리학적 논리를 통하여 정량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여기에서 수리학적 논리의 표현은 실체적 기능의 작용을 상징적으로 반영할 뿐이다. 그러므로 수리학적 공식으로 표현되는 대상의 모든 물리현상은, 실체적 기능의 작용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는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만을 수리적 형태로 표현할 뿐이고, 물리현상의 정성적 효과를 실체적 기능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물리현상의 정성적 효과를 실체적 기능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이 물리현상의 본성이나 작용원리가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 하나의 예로 상대성이론의 주장처럼 C+0.3C=C'의 합산적 광속도와 C+0.9C=C'의 합산적 광속도가 동일한 가치를 가질 경우, 동일한 가치를 갖는 C'(C+0.3C)의 합산적 광속도와 C'(C+0.9C)의 합산적 광속도는 정성적 기능의 관점에서 구별할 수단이 없다.

실제의 상황에서 C+0.3C=C'의 광속도와 C+0.9C=C'의 광속도는 전혀 다른 효과로 반응되고, 두 광속도의 물리적 의미(존립조건)도 전혀 다르다. 여기에서 동일한 가치를 갖는 C+0.3C=C'의 광속도와 C+0.9C=C'의 광속도가 각각 다른 효과로 반응되는 것은, 이들의 두 광속도가 다른 조건으로 존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광속도의 본성이나 전파과정을 명료하게 이해하려면, 이 광속도의 정성적 효과가 실체적 기능의 관점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만약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주장처럼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만을 오직 수리학적 논리로 표현할 경우, 물리현상의 본성이나 작용원리가 실체적 기능의 관점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도입되는 과정에서는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공간모형을 선택하였고,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에테르)를 부정하였다. 그러므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기본개념에서는 우주공간이 갖는 고유의 질성(공간적 기능)을 무시할 수밖에 없고, 물리현상의 해석과정에서 우주공간의 질성과 역할을 반영할 수 없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 정교한 수리학적 논리가 개발되었으나,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복잡 난해하게 해석되는 이유는, 우주공간의 질성과 역할을 상징적 의미의 우회적 수단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즉 우주공간의 질성과 역할을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는, 물리현상의 본성이나 작용원리가 비정상의 변칙적 논리로 해석된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우주공간이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공간모형을 갖는다는 하나의 전제조건에서 출발되었다. 이러한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공간모형이 선택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는, 마이켈슨-모올리의 간섭계 실험에서 광학적 매질체로 가정하였던 우주공간의 에테르(Ether)가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이켈슨-모올리가 수행한 간섭계의 실험에서는, 이 간섭계 실험의 결과가 광학적 매질의 존재를 부정하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여기에서 간섭계의 실험결과가 광학적 매질의 존재를 부정하는 의미로 해석된 것은, 지구 중력장의 본질(물리적 정체)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의 실수였다. 즉 지구 중력장의 실제적 상황은 우주공간에 대해 독립적으로 분리된 고유의 조직체제(공간계)를 갖는다.

그러나 마이켈슨-모올리는 지구 중력장의 조직체제(공간계)가 우주공간에 대해 독립적으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들의 간섭계가 우주공간을 직접 관통하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이러한 의미의 오해는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어서, 올바른 공간개념의 정립에 큰 장애가 된다.

지구의 중력장은 우주공간에 대해 독립적으로 분리된 고유의 공간계(공간의 조직체제)와 좌표계를 갖고, 마이켈슨-모올리의 간섭계가 지구 중력장의 공간계(좌표계)에 대해 정지상황을 유지하였다. 그러므로 마이켈슨-모올리의 간섭계 실험에서는 광학적 간섭무늬의 변위효과가 발견되지 않았고, 이 간섭계의 실험결과로 광학적 매질의 존재가 검증될 수 없었다.

마이켈슨-모올리의 입장처럼 간섭계 실험이 수행되었던 주변의 환경적 조건(지구의 중력장)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그 실험결과의 물리적 의미가 왜곡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실험결과의 인위적 해석은 항상 왜곡의 개연성을 갖고, 왜곡적 해석의 논리는 올바른 진리의 접근을 차단한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에서는 변칙적 방법으로 수행된 간섭계의 실험결과를 하나의 물리법칙(광속 일정불변의 법칙)으로 정의하였다. 이와 같이 변칙적으로 수행된 실험결과를 물리법칙으로 정의할 경우, 이 물리법칙의 활용과정에서는 반드시 논리적 모순의 결함이 표출된다.

간섭계의 실험결과가 왜곡적으로 해석되지 않았다면,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공간모형을 전제한 현대물리학이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왜곡의 개연성이 내포된 공허한 공간모형에 대해 현대물리학의 모든 운명을 걸고 무분별로 발전되는 것은 대단히 불안한 모험이다.

강단의 물리학자들은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고전물리학의 기본개념에서 계승 발전된 것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강단 물리학자들의 인식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물리학의 존립조건과 현대물리학의 존립조건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로 고전물리학의 성립조건에서는 절대적 좌표계와 절대적 공간모형(에테르의 공간)을 전제하고, 현대물리학의 성립조건에서는 상대적 좌표계와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공간모형을 전제하였다.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에테르)를 전제한 고전물리학과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공간모형을 전제한 현대물리학은 성립조건이 전혀 다르고, 논리의 유도과정도 전혀 다르다. 강단 물리학자들의 일반적 인식에서 그동안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의 차별성이 분명하게 부각되지 않았던 원인은, 두 주장의 고유한 특성이 혼동되고, 두 주장의 장점만을 편의적으로 선택하여 기회적으로 활용하는 이중적 사고 때문이다.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의 기본개념은 존립기반이 전혀 다르고, 존립기반이 전혀 다른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의 기본개념은 동시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비정상적 논리로 구성된 현대물리학의 기본개념을 폐기하고, 고전물리학의 기본개념을 선택하여 개량적으로 보완한다. 여기에서 개량적으로 보완된 고전물리학의 기본개념을 활용할 경우,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실체적 기능에 의해 합리적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모든 물리현상의 작용은 우주공간의 영역에서 발현되고, 우주공간의 영역은 모든 물리현상의 작용을 수용한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의 질성(우주공간의 성질이나 기능)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모든 물리현상의 규명과정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 조건을 갖는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우주공간이 고유의 질성을 갖고, 우주공간의 모든 영역이 실체적 요소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실체적 요소의 분포에 의해 우주공간은 고유의 조직체제와 공간계를 갖는다. 여기에서 우주공간이 고유의 질성과 조직체제를 갖고, 우주공간의 모든 영역이 실체적 요소로 구성되었을 경우, 현대물리학의 기본개념과 모든 해석이 폐기되어야 한다.

필자의 주장처럼 실체적 요소로 가득 채워진 우주공간에서는 순수한 의미의 상대성이론이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가 절대적 좌표계를 형성하고, 이 우주공간의 절대적 좌표계에 대해 모든 물리현상의 변위량이 절대적 가치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우주공간의 모든 영역이 실체적 요소로 구성되었을 경우, 이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와 모든 물리현상의 작용은 반드시 인과적 연계성을 가져야 한다. 또한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는 반드시 우주공간의 질성(우주공간의 성질이나 기능)을 적용하는 논리로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주공간의 질성을 적용하지 않은 의미의 모든 논리는 물리학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다.

상대성이론의 주장처럼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를 부정할 경우,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왜곡적(변칙적)으로 해석되고, 진정한 의미의 물리학이 성립되지 않는다. 즉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를 부정하면, 물리현상의 정성적 해석이 불가능하다.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를 도입한 필자의 절대성이론에서는, 현대물리학의 모든 주장이 얼마만큼 왜곡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그동안 현대물리학의 관점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다.

우주공간에서 발현된 물리현상의 본질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면, 두 가지의 논리적 수단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는 수리학적 논리로 표현되고, 물리현상의 정성적 효과는 실체적 기능의 논리로 표현되어야 한다. 즉 물리현상의 본질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량적 해석과 정성적 해석이 동시적으로 요구된다.

물리현상의 표현과정에서 정량적 해석과 정성적 해석을 동시적으로 적용하지 않을 경우, 물리현상의 본질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곤란하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는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만을 표현하기 위한 수리학의 논리만이 개발되었을 뿐이고, 아직까지도 정성적 효과의 표현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균형의 표현이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맹점이다.

엄밀한 의미의 관점에서 물리현상의 정성적 효과와 정량적 가치는 표현의 수단이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수리학적 논리는, 물리현상의 정성적 효과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의 예로 상대성이론에서 제시된 수리학적 논리가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를 엄밀하게 표현하더라도, 이 상대성이론의 수리학적 논리로 해석된 물리현상의 작용원리가 왜곡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오늘날의 현대물리학에서는 물리량의 정량적 가치가 수리학적 논리를 통하여 정밀하게 해석된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에서는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복잡 난해하게 해석된다. 왜냐하면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를 부정하고, 우주공간의 질성이 갖는 기능적 역할을 상징적 내지 우회적 논리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는 그동안 물리학의 모든 용어가 불분명한 의미로 정의되었고, 이 불분명한 의미의 용어를 변칙적으로 활용하였다. 이와 같이 물리학의 모든 용어가 불분명한 의미로 정의되었을 경우, 이 불분명한 의미의 용어는 정상적으로 활용할 수 없고,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변칙적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면, 이들의 해석과정에서 적용할 물리학의 용어가 명확한 의미로 정의되어야 한다.

모든 물리현상의 정성적 효과는 형용적 의미의 용어(단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즉 물리현상의 정성적 효과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용어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물리현상의 근원적 요소를 표현하기 위한 용어가 올바르게 정의될 경우, 이 올바른 용어를 통하여 다른 용어들까지 연쇄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현대물리학에서는 올바르게 정의된 물리학의 용어가 없다.

오늘날의 현대물리학에서 사용하는 물리학의 모든 용어는 불분명한 의미를 갖고, 불분명한 의미를 갖는 물리학의 용어는 활용성의 가치가 없다. 이와 같이 현대물리학에서 사용하는 물리학의 모든 용어가 불분명한 의미를 갖는 원인은, 불분명한 의미의 용어에 의해 다른 용어가 불분명한 의미로 정의되고, 불분명한 의미의 용어에 의해 또 다시 다른 용어가 정의되는 악순환의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현대물리학에서 정의된 물리학의 모든 용어가 불분명한 의미를 갖는 상황은, 철수와 영희의 두 사람에 대한 상호적 표현을 통하여 편리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예로 철수는 ‘영희의 친구’로 표현되고, 영희는 ‘철수의 친구’로 표현될 경우, 철수와 영희의 두 사람끼리 서로가 서로를 교차적으로 표현하여서, 철수와 영희의 두 사람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일정한 한계성을 갖는다.

철수와 영희의 두 사람끼리 서로가 서로를 교차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철수와 영희의 불분명한 의미가 순환적으로 반복되고, 이 불분명한 의미의 한계성을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철수가 불분명한 영희를 통하여 표현되고, 영희가 불분명한 철수를 통하여 표현되기 때문이다.

현대물리학에서도 철수와 영희의 상호적 표현처럼 불분명한 의미로 정의된 물리학의 용어끼리 서로가 서로를 교차적으로 해석한다. 이와 같이 불분명한 의미로 정의된 물리학의 용어끼리 서로가 서로를 교차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이들의 용어가 가졌던 최초의 불분명한 의미를 해소할 수 없다. 하나의 예로 질량의 본성은 불분명한 의미의 관성력을 통하여 정의되고, 이 관성력의 본성은 불분명한 의미의 질량을 통하여 정의되었다.

불분명한 질량과 관성력의 두 용어끼리 서로가 서로를 교차적으로 정의할 경우, 질량과 관성력의 두 용어에 내포된 최초의 불분명한 의미가 개선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질량이나 관성력과 같은 물리학의 기초적 용어가 불분명한 의미로 정의될 경우, 이 불분명한 의미의 질량이나 관성력이 정상적으로 활용될 수 없다.

현대물리학의 모든 주장에서는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불분명한 의미의 용어로 해석되었다. 또한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불분명한 의미의 용어로 해석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러므로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불분명한 의미의 용어로 해석하는 현대물리학의 모든 주장이, 일반인들의 상식적 입장으로 명확하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물리학의 관점으로 인식된 질량과 관성력의 두 용어를 더욱 명료한 의미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질량과 관성력의 용어가 상호적 순환형태로 적용되지 않도록, 질량과 관성력의 용어를 독립적 입장으로 다루어야 한다. 만약 질량의 의미가 관성력의 용어로 정의되었을 경우, 관성력의 의미를 정의하는 과정에서는 가급적 질량의 용어가 사용되지 않아야 된다.

필자가 앞으로 제시하게 될 [절대성이론]에서는, 질량의 본질이 실체적 질료(재질)의 관점으로 해석되고, 관성력의 본질이 역학적 기능(현재의 진행상황으로 작용하는 일에너지)의 관점으로 해석된다.

현대물리학의 물질관처럼 물체의 질량과 관성력이 인과적 연계성을 가질 경우, 물질적 의미의 질량이 역학적 기능의 관성력으로 표출되는 과정이나, 역학적 기능의 관성력이 물질적 의미의 질량에 대해 반응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된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에서는 질량과 관성력의 인과적 연계성을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논리가 아직까지 제시되지 않았다. 물론 현대물리학의 물질관에서는 질량과 관성력의 인과적 연계성을 해명하기 위해 힉스장(Higgs field)의 공간모형을 도입하였으나, 이 힉스장의 공간모형은 또 다른 의미의 논리적 결함을 갖는다.

현대물리학의 물질관에서 주장한 힉스장은 절대적 좌표계의 의미를 갖는다. 만약 우주공간의 힉스장이 절대적 좌표계의 의미를 가질 경우, 우주공간에서 복수의 상대적 좌표계를 다중적으로 설정한 특수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이 폐기되어야 한다. 즉 현대물리학에서 주장하는 우주공간의 힉스장과 특수 상대성이론의 좌표개념은 동시적으로 양립될 수 없다.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불분명한 의미의 용어를 통하여 사변적 논리로 진화되었다. 이와 같이 사변적 논리로 진화된 현대물리학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강단 물리학자들이 안내하는 물리학적 최면의 세계로 빠져들어야 한다. 만약 강단 물리학자들이 안내하는 사변적 논리의 최면에 빠져들지 않을 경우, 현대물리학의 비정상적 주장이 수용될 수 없다.

강단의 많은 물리학자들은 허황된 사변적 논리의 함정에 갇혀 있으나, 이러한 상황을 아직까지 그들만이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사변적 논리의 함정을 벗어날 수 없는 강단 물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오늘날의 현대물리학을 절대적 진리로 신봉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강단 물리학자들의 입장으로 현대물리학의 논리적 결함을 발견(인식)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물리학의 모든 용어가 명료한 의미로 정의되었을 경우, 사변적 논리로 진화된 오늘날의 현대물리학은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인들의 상식적 입장에서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일반인들의 사고력이나 분별력이 부족한 것을 의미하지 않고, 현대물리학의 해석이 심각하게 왜곡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현대물리학의 상황처럼 물리학의 용어를 불분명한 의미로 정의하고, 이 불분명한 의미의 용어를 변칙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는, 물리학의 정상적 발전이 기대될 수 없다. 즉 불분명한 용어를 변칙적으로 활용하는 현대물리학에서는, 물리학의 정상적 진화가 곤란하고, 극심한 혼란만이 초래될 뿐이다. 현대물리학의 진화과정에서 물리학의 모든 용어가 불분명한 의미로 정의된 이유는,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를 부정하고, 이 실체적 요소의 질성을 물리현상의 해석과정에서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운동 기차의 체적이 관성계를 갖는 것으로 가정하고, 이 운동 기차의 관성계를 좌표계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좌표계의 배경은 반드시 관성계의 기반을 가져야 한다. 즉 상대성이론의 도입과정에서는 관성계와 좌표계가 반드시 동일한 위상으로 일치되는 것을 전제하였다.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은 하나의 관성계에서 오직 하나의 좌표계가 설정되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관성계에서 다수의 상대적 좌표계가 중복적(다중적)으로 설정될 수 없다. 만약 하나의 관성계에서 다수의 상대적 좌표계가 중복적으로 설정될 경우, 이 다수의 상대적 좌표계는 고유의 관성계를 개별적(독자적)으로 가질 수 없다. 여기에서 고유의 관성계를 개별적으로 갖지 않는 대상의 모든 상대적 좌표계는 허구적 위상이다.

우주공간에서 기차가 운동할 경우, 이 운동 기차가 갖는 관성계의 범위는 반드시 운동 기차의 체적 내부로 제한되어야 한다. 즉 운동 기차의 관성계가 운동 기차의 외부로 연장되지 않았다. 만약 운동 기차의 외부로 좌표계를 연장할 경우, 이 운동 기차의 외부로 연장된 좌표계는 관성계의 기반을 독립적으로 가질 수 없다.

일반적 논리의 관점에서 좌표계의 표현대상은 반드시 해당 좌표계의 내부로 수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운동 기차의 관성계와 좌표계가 운동 기차의 체적(부피)을 벗어난 우주의 끝까지 연장된 것으로 오해하였다. 즉 운동 기차의 관성계와 좌표계는 우주공간의 모든 물리현상을 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의 모든 물리현상을 운동 기차의 좌표계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공간모형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우주공간도 하나의 관성계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우주공간에서는 오직 하나의 좌표계가 설정되어야 하고, 하나의 좌표계는 절대성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의 절대적 좌표계를 갖는 우주공간에서는, 다수의 상대적 좌표계가 다중적으로 설정될 수 없다. 이러한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우주공간에서 다중적으로 설정된 상대적 좌표계는 관성계의 기반을 갖지 않는 허구적 위상이다.

관측자는 공간의 체적이 없는 하나의 질점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질점의 운동 관측자는 공간의 체적이 없고, 공간의 체적이 없는 질점의 운동 관측자는 고유의 관성계를 독자적으로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질점의 운동 관측자에게 설정한 상대적 좌표계는 관성계의 기반을 갖지 않는 허구적 위상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관성계를 갖지 않은 질점의 운동 관측자에게 허상(허구적 위상)의 상대적 좌표계를 임의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질점의 운동 관측자에게 설정한 허상의 상대적 좌표계는, 우주공간이 실체적으로 갖는 거리의 단위와 거리의 좌표축을 모사적으로 차용(인용)한 것이다. 이러한 허상의 상대적 좌표계는 실천적 활용의 가치가 전혀 없다.

진공적 의미의 공허한 우주공간은 하나의 관성계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관성계를 갖는 공허한 우주공간에서는 오직 하나의 절대적 좌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 즉 공허한 우주공간에서는 관성계의 기반을 갖지 않는 허상의 상대적 좌표계가 다중적으로 설정될 수 없다. 그러나 허상의 상대적 좌표계를 적용하여 유도된 상대론적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는, 실제의 물리현상(실험결과)과 엄밀하게 일치되는 유효성을 갖는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이론에서 허상의 상대적 좌표계를 도입하였으나, 이 상대적 좌표계의 적용으로 유도된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는 유효성을 갖는다. 이와 같이 상대적 좌표계의 적용으로 유도된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가 유효성을 갖는 것은, 이 로렌츠인수 의 유도과정이 왜곡되었으나, 이 로렌츠인수 의 완성적 구조는 정상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로렌츠인수 의 완성적 구조에는 아인슈타인도 인식하지 못한 미지의 다른 의미가 내포되었다.

상대론적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가 유도되는 과정에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다른 작용을 두 좌표계 S와 S'의 상대적 변위효과 S→S'로 오해하였다. 즉 로렌츠인수 의 유도과정에서는 두 좌표계 S와 S가 상대적으로 변위되는 상황을 전제하였으나, 이 로렌츠인수 의 완성적 구조에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다른 상황이 포함되었다.

상대성이론의 중대한 오류는 관성계와 좌표계의 용어를 왜곡적으로 정의하고, 왜곡적으로 정의된 관성계와 좌표계의 용어를 변칙적으로 활용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엄밀한 의미의 관점에서 운동 기차의 관성계(소립자의 분포범위)는 고유의 좌표계를 독자적으로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우주공간의 조직체제(공간계)가 좌표계의 근원적 기반을 갖고, 운동 기차의 관성계가 우주공간의 조직체제를 유령의 형체처럼 투과적으로 관통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지구의 중력장은 고유의 공간계(공간적 조직체제)를 독립적으로 갖고, 이 중력장의 공간계는 지구의 본체와 함께 우주공간에서 등속도로 공전한다. 즉 지구 중력장의 공간계는 우주공간에 대해 독립적으로 분리된 고유의 좌표계를 갖는다. 또한 질점의 운동 관측자는 관성계의 기반을 갖지 않는다. 이와 같이 관성계의 기반을 갖지 않는 질점의 운동 관측자에 대해 독립적 좌표계가 설정될 수 없다.

지구의 중력장 내부에서 기차의 관성계나 질점의 관측자가 운동할 경우, 이 운동 기차의 관성계나 질점의 운동 관측자는 지구 중력장의 공간계(공간조직, 좌표계)를 유령의 형체처럼 투과적으로 관통한다. 그러므로 지구 중력장의 공간계를 투과적으로 관통하는 운동 기차의 관성계나 질점의 운동 관측자에 대해 고유의 좌표계를 독립적으로 설정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상대론적 좌표변환식의 로렌츠인수 를 유도하기 위하여, 두 좌표계 S와 S'의 상대적 변위효과 S→S'를 종이의 지면에서 취급하였다. 이와 같이 두 좌표계의 상대적 변위효과가 종이의 지면에서 취급되는 것은, 변위작용의 두 좌표계 S와 S'보다 더욱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절대적 좌표계(기준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의 절대적 좌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두 좌표계 S와 S'의 상대적 변위작용이 도식적으로 표현될 수 없다.

상대성이론의 로렌츠인수 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변위상황의 두 좌표계 S와 S'보다 더욱 근원적으로 실존되는 하나의 기초적 좌표계는 종이의 지면을 의미한다. 즉 로렌츠인수 의 유도과정에서 종이의 지면은 기초적 좌표계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상의 설명처럼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은 총체적으로 심각한 논리적 모순의 결함을 갖는다. 또한 논리적 모순의 결함을 갖는 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은 그동안 변칙적으로 진화되었고, 이 상대성이론의 변칙적 활용으로 해석된 모든 주장도 논리적 모순의 결함을 갖는다. 그러므로 논리적 결함을 갖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폐기되어야 한다.

자연의 물리현상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관점으로 해석되는 과정은,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들의 상식적 입장에서 간단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이해가 곤란한 것은, 일반인들의 사고력이 현대물리학의 심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없거나, 현대물리학의 기본개념이 비정상적 논리로 구성되었다는 두 가지의 개연성을 암시한다. 즉 현대물리학의 기본개념이 왜곡되고, 현대물리학이 변칙적으로 진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물리학은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표현의 수단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수단의 활용과정에서는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도구가 물리적 실체의 기능을 갖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도구가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즉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표현의 수단을 활용하는 과정에 의해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출현되었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일반인들의 상식적 수준으로 수용할 수 없는 구조적 결함을 갖는다. 그러므로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고난도의 논리로 구성되고, 이 고난도의 현대물리학이 무지몽매한 일반인들의 사고력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속설은, 강단 물리학자들의 실수를 일반인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책임회피의 변명에 불과하다.

현대물리학에서는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가 수리학의 논리를 통하여 엄밀하게 표현될 수 있었으나,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정성적 기능의 관점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수리학적 표현의 대상이나 기하학적 표현의 대상은 반드시 실체적 기능을 가져야 되고, 실체적 기능을 갖지 않는 것은 수리학적 표현의 대상(기하학적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물리현상의 실체적 기능과 수리학적 표현(기하학적 표현)은 반드시 대응적으로 비교되는 인과적 연계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유도되는 과정에서는 물리현상의 실체적 기능의 존재를 부정하고, 실체적 기능의 비교대상을 부정한 수리학적 표현의 논리가 무분별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이 실체적 기능의 비교대상이 부정된 수리학적 표현(기하학적 표현)의 논리는 허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허구적 의미를 갖는 수리학적 표현의 논리는 순수한 물리학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

수리학의 본질은 실체적 기능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반영할 뿐이고, 수리학의 본질이 실체적 기능의 성질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 즉 모든 물리현상은 실체적 기능의 작용에 의해 발현되고, 이 물리현상으로 발현된 실체적 기능의 규모를 정량적 가치로 표현하는 것이 수리학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물리현상의 실체적 기능과 수리학적 표현은 반드시 대응적으로 비교되는 인과적 연계성을 가져야 한다.

수리학의 본질이 실체적 기능의 성질을 반영하지 않을 경우,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수리학적 표현의 논리를 통하여 해석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면, 모든 물리현상의 발현과정에 대해 인과적 연계성을 갖는 실체적 기능의 존재가 선행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에서 도입한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는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를 상징적 의미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는 실체적 기능의 가치를 정량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상징적 의미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에 의해 이해될 수 없다.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표현의 도구는 실체적 기능의 성질을 반영하지 않는다. 또한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표현의 도구는 물리현상의 구성요소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상징적 의미의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가 정성적 표현의 수단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진화되는 과정에서는,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표현의 도구가 실체적 기능을 갖는 것으로 오해하고, 이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표현의 도구를 이용하여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까지 해석하였다. 이와 같은 수단의 무모한 시도는 실체적 기능의 순수한 물리학이 상징성의 수리적 논리로 변질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현대물리학에서는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실체적 기능의 작용원리로 해석하지 않고,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표현의 도구로 해석하였다. 여기에서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수리학적 논리로 해석하는 현대물리학은 매우 복잡 난해한 상징적 의미만을 갖는다. 이와 같이 상징적 의미만으로 구성된 현대물리학의 복잡 난해한 해석을 일반인들의 상식적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는 오직 실체적 성질을 통하여 정성적 기능의 논리로 해석되어야 하고, 모든 물리현상의 규모적 가치는 수리학적 표현의 도구를 통하여 정량적 논리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물리현상의 본질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정성적 논리의 표현과 정량적 논리의 표현을 하나의 체제로 통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리학이 개발되어야 한다.

자연의 모든 물리현상은 실체적 기능의 작용에 의해 발현된다. 즉 자연의 모든 물리현상은 반드시 실체적 기능의 작용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표출된다. 그러므로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는 오직 실체적 기능을 통하여 정성적 논리로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실체적 기능의 역할을 부정한 사변적 논리의 모든 주장은 진정한 물리학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

모든 물리현상은 반드시 실체적 기능의 작용으로 발현되고, 실체적 기능의 작용으로 발현된 모든 물리현상의 규모는 수리학의 논리를 통하여 정량적 가치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는 물리현상의 규모만을 정량적 가치로 표현할 뿐이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까지 수리학적 논리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없다.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는 수리학이나 기하학의 논리로 이해될 수 없으나, 현대물리학에서는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수리학이나 기하학의 논리로 해석하였다. 현대물리학에서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수리학이나 기하학의 논리로 해석된 원인은,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표현의 도구가 물리적 실체의 기능을 갖는 것으로 오해하였기 때문이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일반인들의 상식적 입장으로 이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현대물리학의 용어가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의 관점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즉 현대물리학에서는 물리학의 용어를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의 관점으로 정의하고, 이 기하학적 논리의 용어로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해석하였다.

현대물리학에서 주장하는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는,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를 엄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는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정성적 기능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없다. 즉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상징적 의미의 수리학이나 기하학적 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순수한 물리학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절대성이론’에서는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이 비정상적으로 진화된 과정과 그동안의 오해를 분석하고, 이 상대성이론을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리학이 제시된다. 이러한 ‘절대성이론’의 새로운 물리학에서는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실체적 기능의 관점으로 해석된다. 하나의 예로 우주공간의 모든 영역은 실체적 요소로 구성되고, 이 실체적 요소의 질성이 모든 물리현상의 발현과정에 대해 인과적 연계성을 갖는다.

필자의 ‘절대성이론’에서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가졌던 긍정적 부분을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물리학의 수준이 더욱 높은 단계로 발전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한다. 자연의 모든 물리현상은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를 이용하여 존립된다. 즉 자연의 모든 물리현상은 우주공간의 실체적 요소에 대해 존립근거의 인과적 연계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는 반드시 실체적 요소의 기능(우주공간의 질성)을 적용하는 논리로 해석되어야 한다.

모든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는 실체적 요소의 질성을 반영하고, 이 실체적 요소의 질성은 오직 형용적 의미의 용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 책의 내용에서 형용적 용어의 서술이 지루하게 전개되는 이유는,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를 정성적 기능의 관점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실체적 요소의 질성을 통하여 정성적 기능으로 해석되고, 물리현상의 변위량은 수리적 도구를 통하여 정량적 가치로 표현된다.

모든 물리현상의 본질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성적 기능의 표현과 정량적 가치의 표현이 동시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는 물리현상의 정량적 가치만을 수리학적 표현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수리학적 표현에서는 물리현상의 본성과 작용원리가 명료한 의미로 이해될 수 없다. 그러므로 강단 물리학의 교과서에서 그동안 긍정적으로 활용되었던 수리학적 표현의 유효한 구조는, 이 책의 내용에서 전혀 다른 물리적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의 내용을 통하여 상대성이론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논의가 종식되고, 앞으로는 학교의 강단에서도 왜곡적 의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더 이상 강의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의 출간을 준비하면서 많은 부족함을 느끼고 더욱 보완할 부분이 발견되었지만, 몇 가지의 제약이 있어서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큰 용기로 마무리하였다.

이 책에서 논의된 내용이 관심 있는 분들에게 유용한 도움을 제공하거나 새로운 착상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면, 그것을 필자의 큰 보람으로 여기겠다.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김  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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